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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살리려면 산업단지부터 ‘번듯한 일터’로 업그레이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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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9회 작성일 22-06-1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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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뿌리산업의 부흥과 글로벌 제조 플랫폼을

꿈꾸는 창업주였다. 고산(46) 에이팀벤처스 대표 이야기다. 에이팀벤처스는 네이버, 쿠팡, 배달의민족처럼

연결 플랫폼 회사다. 고객이 원하는 모양과 기능의 제품을 올리면 제조업체들이 각자 견적서를 내는 방식이다.

고객은 공장 없이도 제품 확보가 가능하고, 제조업체는 일일이 고객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설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외국에서는 ‘공장 없는 제조’가 하나의 흐름이 됐다. 이를 받쳐 주는 플랫폼 경쟁도 시작됐다. 미국의 프로토랩스나 일본 캐디 등이 활발하게 시장을 늘려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하면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전방산업만 강조한다. 그런데 후방인 뿌리산업 없이는 전방도 없다. 금형을 비롯해 국내 6대 뿌리산업 시장 규모만 140조원이다. 이 시장을 더 키우려면 우리도 뿌리산업에 혁신기술을 결합해 공장 생태계를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인수위원 임명장을 받고 있는 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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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에게 인수위원 임명장을 받고 있는 고 대표

-인수위(경제2분과)에서 목소리를 내지 그랬나.

“(웃으며) 안 했겠나. 우리나라는 뿌리산업이 중요하다고 입으로는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사양산업 취급한다. 제조업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게 산업단지다. 그런데 요즘 산단마다 구인난으로 비명이다. 임금이 적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왜 그런지 아나.”

-글쎄. 

“번듯한 직장이 아니어서 그렇다. ‘나, 여기 다닌다’ 하고 주위에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네 산단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시초인 울산산단이 1962년 만들어졌다. 60년 돼 노후화, 공동화가 심각하다. 예전엔 입지가 중요해 특정 산업 중심으로 산단을 꾸렸지만 지금은 물류가 발달해 그럴 필요가 없다. 이젠 산단을 주거까지 연결시켜 번듯한 일터, 쾌적한 삶터로 바꿔야 한다. 100대 국정과제에 넣었으니 (인수위원) 소임은 한 것 같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하마평에도 올랐는데 발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내심 서운하지 않았나.

“전혀. 인수위 들어갈 때부터 ‘어떤 자리도 맡지 않겠다’가 조건이었다. 기업을 하는 입장에서 솔직히 인수위 합류는 매우 부담스러웠다.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싶어 눈 딱 감고 두 달 시간을 뺐는데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웠다.”

-윤석열 대통령이 복잡하고 어려운 규제는 직접 해결해 주겠다고 했는데.

“기업인으로서 정말 반가운 얘기다. 규제는 대통령이 직접 챙기지 않으면 진도가 안 나간다. (인수위 때) 가까이서 보니 윤 대통령은 학습속도가 정말 빠르더라.”

-맨 먼저 어떤 모래주머니를 떼줬으면 싶나.

“규제에 접근하는 정부와 국회의 태도부터 바뀌었으면 싶다. 복수의결권(대주주가 지분율 이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만 하더라도 성장하는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는 필수다. 그런데 대기업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막판에 국회에서 틀었다. 필요성을 인정했으면 규제는 풀어 주고 오남용 방지장치를 고민해야 하는데 아예 막아버린다. 새 사업이 나타나거나 환경이 바뀌면 거기에 맞게 빨리빨리 규제를 바꿔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여기서만 놀아’ 이게 너무 강하다.”

이쯤에서 우주인 얘기를 슬쩍 꺼내 보았다. 마침 순수 한국형 우주발사체인 누리호가 16일 재발사를 시도한다. 그는 2006년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인공지능을 공부하던 서른 살 때 3만 6206대1의 경쟁을 뚫고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으로 선발됐다. 예비후보 이소연씨와 함께 2년 동안 우주인 훈련을 받던 어느 날, ‘우주선 조종법’ 등 러시아가 금지한 책자를 봤다는 등의 이유로 돌연 ‘우주인’에서 ‘우주인 후보’로 강등됐다. 우주인은 이씨로 바뀌었다. 우주로 날아가기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지금 돌이켜 봐도 그게 우주인을 교체할 정도의 규정 위반인가 싶다. 사람들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웃으며) 그런 건 없다. 당시에도 얘기했지만 나는 우주인으로 훈련받으러 간 것이지, 우주관광객으로 러시아에 간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으로 한 행동이었고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2007년 7월 우크라이나 흑해도시 세바스토폴에서 우주선 착수(着水) 훈련을 받고 있는 고 대표.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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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7월 우크라이나 흑해도시 세바스토폴에서 우주선 착수(着水) 훈련을 받고 있는 고 대표.
서울신문 DB

-인생에 우주인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게 싫을 수도 있겠다.

“한때 그런 적도 있었다. 솔직히 우주인에서 탈락했을 때 그렇게 좌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위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괜찮냐’고 했다. 자꾸 그러니까 ‘아, 이게 엄청나게 안 괜찮은 일이구나’ 싶더라. 그래서 오히려 많이 힘들었다.”

우주인 탈락이 “엄청난 충격은 아니었다”는 고백에서 서울대 시험을 두 번 친 이력이 떠올랐다. 그는 서울 한영외고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다. 그런데 대학은 이과(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갔다. 1년도 안 돼 그만두고 다시 시험을 봐서 서울대 수학과를 갔다.

-평범한 청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다. 이런 말 뭣하지만 삶을 좀 일찍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학원(서울대)에서 인지과학을 공부한 것도 그래서다. 그렇다고 내가 좌절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우주인 때도 그렇고, 결국은 살아남아야 하지 않나. 잡초 같은 근성이 좀 있다.”

-외고 다닐 때 돈이 없어 셔틀버스를 못 탔다는 게 사실인가.

“어머니가 미용실을 했는데 아버지 돌아가신 이듬해에 제대로 공부하려면 강남 8학군으로 가야 한다며 서울로 이사했다.(그는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자란 곳은 경기도 광명이다.) 외고가 교재비며 셔틀버스비며 부대비용이 좀 들어간다. 차마 셔틀비까지 달라는 말을 (엄마한테) 못 하겠더라.”

우주인에서 탈락한 뒤 그는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수업을 듣기 전에 우연히 ‘10년 안에 10억명을 바꿔 놓을 프로젝트’에 참가한 게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유학 갈 때까지만 해도 우주인 경험도 있고 해서 과학기술이나 관련 정책을 공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10년 뒤 미래’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캄캄한 방 안에서는 한 발짝도 못 움직이지만 1m만 빛이 보여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 프로젝트에서 만난 사람들은 바로 1m에 매달리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미래를 보여 줄 뭔가가 필요하겠다 싶어 귀국해 카이스트에 계시던 안철수 교수님을 찾아갔다.”

-왜 그분이었나.

“한국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한다면 가장 적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완곡하게 퇴짜를 놓으시더라(웃음). 그래서 내가 직접 창업컨설팅에 뛰어들었고(그는 2011년 비영리법인 ‘타이드 인스티튜트’를 설립했다.) 급기야 창업까지 하게 됐다. 그 인연이 인수위까지 이어졌고….”

우주인 훈련과 창업 중에 뭐가 더 힘드냐는 우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창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우주인 훈련은 앞이 안 보이진 않잖아요. 그런데 우주도, 창업도 도전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통합니다. 그리고 꿈을 꾸는 사람은 힘들지 않아요.”

집에 생활비는 갖다 주느냐는 또 한 번의 우문에 “다행히 작년에 투자를 받아 굶기지는 않는다”고 눙친다. 예전엔 권투를, 지금은 수영을 새벽마다 한다는 그는 “운동으로 체력을 끌어올리면 긍정 에너지도 함께 올라온다”면서 “어떤 때는 긍정 상태를 만들기 위해 수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웃었다. 누리호 발사가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